본문 바로가기

[대장암 일기] 22. 5년 5년. 5년 전 나는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5년 전 나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암담했던 그 시절을 지나,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그 시절을 돌아 그 무언가를 위해 애쓰지 말고, 그저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음에 감사하고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아둥바둥 발버둥치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에 감사하자고 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모든 아픔들과 고통, 두려움들이 기억 저 멀리 날아가버렸는지 익숙해진 눈물과 두려움들이 이제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는 것인지 나는 환자이지만, 마치 그 고통을 모두 이겨내버린 슈퍼맨인것 처럼.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사람인 것 처럼.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버린, 이제 더 이상은 아파서는 안되는 사람. 그래도 지금 그런 존재가 되어있음에 ..
[대장암 일기] 21. 다짐 다짐 오늘도 어김없이 5시 20분. 핸드폰 알람이 적막한 방 안을 가득 메우기 전, 다급히 일어나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한다. ‘후아…’ 복직한지 며칠이 지났지만, 1년이 넘도록 잊고 있었던 습관이라 그런지 이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가자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 무거운 공기들 몇몇이 뒤를 따라온다. 아내가 깨지 않게 슬그머니 방문을 닫고 거실 불을 켰다. 눈이 너무 부신 탓에 한참 동안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응시하다 고개를 슬쩍 들어본다. 갈아입을 옷을 옷장에서 꺼내와 거실에 툭 던져놓고, 세면대와 샤워기 물을 동시에 틀어 놓는다. 세면대로 흘러나오는 물에 칫솔을 흔들어 물을 묻힌다. 세면대 수도꼭지의 물을 잠그고 양치를 시작한다. 양치를 하며 샤워를 준비하는 것..
[암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3. 선택의 문제 - 자연치료와 항암 선택의 문제 - 자연치료와 항암 대장암 수술 후에 의사선생님께서는 항암을 권유하셨습니다. 대장암이 2기정도로 병기가 높지 않아 웬만해서는 항암치료를 잘 하지 않지만, 나이가 젊으니 항암치료를 해서 혹시 모를 재발과 몸 안에 남아있을 암세포를 줄이자는 취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항암치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고, 그 고통의 크기또한 가늠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대장암 수술을 전적으로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랐듯이, 항암치료 역시 의사선생님의 말에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고 따랐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총 6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병기가 높으신 분들이 받는 양 보다 항암제의 투여량이 적어서 항암제 부작용은 그나마 적은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심으로 인한 식욕감퇴와 탈모, 피부발진, 가..
[대장암 일기] 20. 출발 세상 밖으로 2015년 5월 13일. 오전 5시. 핸드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아직 나가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람을 일찍 맞춰 놓았다. 내가 눈을 뜨기가 무섭게 아내도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길게 자란 수염을 정리했다.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은 옷을 입고 머리를 말렸다. 혹시 빠트린 것이 있는지 가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오전 5시 30분. 아직도 집을 나서려면 30분이나 남았다. 1년 3개월이나 지났지만, 그 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이 시간. 집을 나서기 전의 이 시간과 과정에는 변한 것이 없다. 나는 다시 알람을 5시 30분으로 맞췄다. 오전 6시 “잘 다녀와.” “응. 도착해서 전화할게.” 아내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하고 집을 ..
[대장암 일기] 19. 자유롭게 여행 혼자 무엇인가 할 수 있을까? 잠시 동안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으로부터. 집에 혼자 남겨진 남편을 향한 아내의 걱정으로부터. 매일 끼니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염려로부터. 이번엔 또 무얼 해 먹여야 할지 고민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사람들의 위로와 다독임으로부터.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 ‘바깥 음식 조금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혼자 돌아다닐 수 있어.’ ‘더 이상 환자가 아니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야.’ ‘이제 넌 괜찮아.’ 집에 홀로 남아 하루에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말한다. 스스로에게 오기를 부려 한 끼를 굶어 보기도 하고 스스로 자극적인 음식을 만들어 먹어본다. 운동을 걸러보고, 하루 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지내본다.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