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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대장암일기

[대장암 일기] 20. 출발

세상 밖으로
 
 
 
 2015년 5월 13일.
 
 
 
 오전 5시.

 핸드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아직 나가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람을 일찍 맞춰 놓았다. 내가 눈을 뜨기가 무섭게 아내도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길게 자란 수염을 정리했다.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은 옷을 입고 머리를 말렸다. 혹시 빠트린 것이 있는지 가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오전 5시 30분.
 
 아직도 집을 나서려면 30분이나 남았다. 1년 3개월이나 지났지만, 그 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이 시간. 집을 나서기 전의 이 시간과 과정에는 변한 것이 없다. 나는 다시 알람을 5시 30분으로 맞췄다.
 
 
 
 오전 6시
 
 “잘 다녀와.”
 
 “응. 도착해서 전화할게.”
 
 아내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새벽의 공기는 여전히 시원하고 상쾌했다. 길거리에는 아직 새벽의 이슬이 땅을 붙잡고 깨지 않은 것 같았다. 열심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전 6시 15분.
 
 여전히 그 자리에는 그대로 버스가 정차해 있다. 아침에 무거운 몸과 정신을 겨우 이끌고 탑승하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힘차게 버스에 올랐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버스가 힘차게 출발했다. 평소 같으면 눈을 조금 붙였겠지만, 오늘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유리창 밖으로 지나가는 이 모든 풍경을 다시 내 눈에 꼼꼼히 넣어두고 싶었다. 안개가 끼어 잘 보이지도 않는 이 풍경을. 나에게는 1년도 더 된 이 다를 것 없는 풍경을 가득히 담아두고 잊지 않고 싶었다.
 
 
 
 오전 7시 20분.
 
 버스는 1년 반 전의 그 길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달려 사람들을 토해냈다. 여전히 사람들은 잠에서 덜 깬 채로 버스에서 내려 각자의 길로 향했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내가 갈 길로 향했다.

 ‘정말 이 길이 내가 다시 가야 할 길은 맞는 것일까?’
 
 
 
 오전 7시 30분.
 
 건물 로비에 들어서서 친구녀석을 불러냈다. 그리고 익숙하게 로비에서 커피를 마셨다.

 
 
 나는 오늘 다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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