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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일기] 18. 봄 다시 봄 “날씨도 좋은데, 어디 나갈까?” 아내가 묻는다. “글쎄……어디 가지?” “일산도 좋고, 날씨가 좋으니깐.” 작년 봄, 성치 않았던 몸을 이끌고 아내와 가끔 일산에 가곤 했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나고 화장실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매일 집에만 있기 답답해 하던 아내와 나를 위한 외출이었다. 물론 도시락 지참. 힘들게 자동차를 달려 도착한 일산에서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근처를 배회하는 것과 30분 남짓 오락실에서 노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외출도 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많은 것이 불편했을 외출이었지만, 집에만 있던 아내와 나에게 당시에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외출은 없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다시 일산에 갈 생각을 하니 새삼 다시 봄이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나에게 ..
[대장암 일기] 17. 방심 방심 “여보세요.” 아내의 핸드폰이 울리고 조심스럽게 아내가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몇 마디 나누더니 내 안부를 전화기 너머로 전한다. 내 상태를 알고 걱정하고 있는 그 누군가 일 것이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남편을 간병하는 아내를 걱정하는 그 누구. 아내는 연신 ‘네’만 반복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말을 전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아내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분, 오라버니가 췌장암 말기였대. 그런데 치료를 다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갔대. 원래는 시한부로 5개월 선고 받았는데, 지금은 5년이 넘게 살아계신대.” 암 판정을 받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버리셨단다. 그리고 모든 것을 ..
[대장암 일기] 16. 어리광 마지막 항암 항암 주사를 처음 맞고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억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냄새. 그 느낌. 그 공기. 모든 것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은 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벌써 7개월이나 지났다. 6차 항암 계획의 마지막인 여섯 번째 항암이지만, 적응 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마지막 주사만 맞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나건만, 그 주사를 맞으러 가는 길은 처음 주사실로 올라가던 발걸음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휴우……웩!” 마음을 다잡는다고 크게 한숨을 쉰다는 게 그만 주사실의 냄새를 한번에 모두 들이키고 말았다. 주사를 맞으면 맞을수록 작은 냄새에도 민감해 진다. 더구나 가장 맞기 힘든 일주일의 마지막 항암주사. 그리고 이번엔 아내가 아닌 부모님과 함께 치료를 받으러 왔..
[대장암일기] #일년의 편지 2014년 2월 13일. 대장암 3기. 부천 순천향 대학교 병원에서 대장암 3기 의심을 받은지 딱 1년이 지났습니다. 대장암 판정을 받기 직전까지도 별로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와이프와 장난을 쳐 가면서 웃고 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대장안 3기 의심 판정을 받고 난 뒤에 무언가가 나를 저 땅 속 어딘가로 끌어내리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 앞에서 터져버린 울음과 아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던 기억. 어머니께서 제 얼굴을 보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시며 해 주셨던 기도와 울부짖음. 친구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릴 때, 핸드폰 너머로 들리던 그 안타까움. 1년 전 오늘 부터, 밤마다 나를 괴롭히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공포.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어제 일어난 일 처럼, 너무나도..
[대장암 일기] 15. 하루#1 항암 벌써 해가 중천이다. 항암을 받는 날은 되도록 출근시간을 피해서 이동한다. 조금이라도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나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한다. 벌써 항암도 4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항암주사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부터 항암주사 생각에 벌써 구토가 올라오는 것 같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운전도 직접 하고 이동하건만, 이미 머릿속은 항암주사를 맞는 장면을 구간반복하는 것 외에 다른 장면이 떠 오르지 않는다.병원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느껴지는 소독약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겨우 참고 주사실로 올라가면, 항암제 특유의 냄새가 내 비위를 거슬리게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풍기는 소독약 냄새, 채혈을 할 때 맡게 되는 소독약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