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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일기] 9. 다시 터널 속으로 후반전의 시작 퇴원 후 한달 정도가 지나자, 몸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서른 번도 넘게 다녔던 화장실이 열번 내외로 눈에 띄게 줄었다. 실제로 이 변화를 체감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분명히 화장실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깥생활을 자유롭게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퇴원 후 한달 정도 후에 외래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그 때에 항암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장암 3기로 판단을 받았기 때문에 몸에 남아있을 암세포의 전이를 막기 위해서는 치료를 해야한다고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있었지만, 주변에 항암치료를 받아본 사람도 없고 비슷한 경험을 들은 바가 전혀 없..
[대장암 일기] 8. 식탁과 화장실 참을 수가 없다. 병원에서 퇴원 전에 식사가 시작되었다. 이 식사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병원 밥상을 받고 나서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무의식 속에서, 암을 선고 받은 때로부터 가졌던 질문. 내가 다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이 밥상이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이유는 나도 모르게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다. 아내도 옆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흘리는 아내의 눈물이 또 다시 고마웠다. 그리고 수저를 들었다. 미음과 같이 주어진 반찬을 꼭꼭 씹어서 먹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게 음식을 다시 한번 허락하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술 후 식사를 하기 전까지..
[대장암 일기] 7. 아내의 힘 회복 "여보, 잠들면 안돼" 눈을 감으려던 찰나, 아내가 나를 깨운다. 너무 졸린데 아내가 자꾸 날 깨운다. 수술 후 마취에서 풀리고 나면 한동안은 잠들면 안된다. 일정 시간동안은 깨어있는 채로 심호흡 연습을 해야한다. 간호사는 내가 마취중에 자가호흡을 하지 않고 기계로 호흡을 했기 때문에 폐가 팽창되어있지 않고 쭈그러든 풍선같은 상태라고 했다. 때문에 심호흡을 계속 해주어 풍선을 다시 빵빵한 상태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시계는 1시를 조금 넘었다고 알려주고 있었는데, 간호사는 저녁 10시까지는 잠들면 절대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병실을 나갔다. 수술 후 염증으로 인한 열도 내려가야한다고 했다. 체온을 몇 시간이고 측정을 했지만 38도에서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제정신이 ..
[대장암 일기] 6. 전반전의 끝 아파...너무 아파... '으윽...' 정신이 조금 드는 걸까.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다. 안경을 쓰지 않은 탓일까. 아니다. 흐릿한 장면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어둠 속이다. 내가 정신이 약간 들어 있다는 것 외에는 깜깜한 어둠 속이다. 여기가 어딜까. 지금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으윽..." 옆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 나의 마지막 기억이 생각났다. 난 수술실로 들어갔고, 마취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아직 다 세지 못한 숫자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수술이 끝났구나' 현실감이 돌아오는 순간 모든 감각들이 흔들어 놓은 콜라뚜껑을 딴 것 처럼 뿜어져 나왔다. 온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면서 주위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흐릿한 천정이 보이고. 난 이동식 간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
[대장암 일기] 5. 이건 드라마가 아니다 수술 드디어 수술 날 아침이 되었다. 별 다른 걱정 없이 잠든 덕에 컨디션에는 문제가 없었다. 물론, 컨디션에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수술을 집도하시는 의사선생님의 컨디션이 좋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7시 반이 되자 병실이 부산해 지기 시작했다. 수술실로 나를 이동 할 이동식 간이 침대가 병실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 다른 설명도 없었고, 별 다른 의료진이 나와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의료진이 이동식 간이 침대를 병실 앞에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때를 돌아보는 내 기억은 이런 이른 아침을 부산스럽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도 수술을 하는 데에 있어서 별 걱정이 없다고, 무섭지 않다고 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