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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일기] 12. 해결사 대화가 필요해 어느 날,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운동을 다녀오셨다. 그 동안 나는 집에서 운동을 좀 하고 집안일도 이것저것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인터넷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 위에 손을 얹는 순간,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너 왜 이렇게 운동도 안하고 앉아있어? 운동해야 한댔잖아. 컴퓨터 앞에 그렇게 앉아있는게 제일 안좋다고! 왜 운동 안해!" 나에게 변명할 틈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일일이 변명을 하자니, 너무 핑계를 대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나는 하려던 컴퓨터를 포기하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족욕한다며! 아직도 안하고 있네? 왜 안해? 족욕해서 몸 온도를 올려야 한다니까!" 정신이 혼미해 지고 있었다. 이걸 일일이 다 변명을 해야하는 것일까. 곧 하려고 했다는 말..
[대장암 일기] 11. 창살없는 감옥 창살없는 감옥 스스로를 죄인이라며 우울함 속에 지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가족들을 볼 때 마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아픔이 보였다. 아내는 24시간 아픈 남편을 돌보며, 팔자에도 없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어디 잘 나가지도 못하는 생활이 불편해 보였다. 어머니는 연고도 없는 이 곳에서 아들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서 힘쓰시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둘 다 가고싶은 곳도 가지 못하고 먹고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에게는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나가서 마음 껏 친구들을 만나고 오라고도 했다. 낯선 곳에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어머니에게도 잠시 내려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바람도 좀 쐬고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들은 아픈 나를 남겨놓고 즐겁지 않다고 ..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2. 대면 준비 진정이 되지 않는 아내의 속을 달래며 다섯 시간이 넘는 운전 끝에 아들 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니 막상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한참을 차 안에서 내리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아들 내외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또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동을 끈 차 안은 나와 아내의 숨소리만으로 가득했고, 그 숨소리 조차 조심스러웠다. 나는 아내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탔다. 21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였지만, 한 없이 바닥으로 꺼져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딩동."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 후에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얼핏 문을 연 며느리 뒤로 눈에 초점을 잃은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무슨 죄인..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1. 무너지면 안된다. 전화 2014년 2월. 여느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요즘 중국어에 푹 빠져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은퇴 후에 별 달리 집에서 하는 일이 없지만, 운동과 공부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유일한 일과다. 특히, 중국 출장을 다녀와서 흥미를 갖게 된 중국어 공부는 정말이지 내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오늘도 아내는 친구와 찜질방을 간다며 나가고 없다. 은퇴 후 아내와 함께 하루를 온전히 보낼 생각을 했었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텔레비젼을 보아도 환갑을 넘긴 아내들은 이제와서 가정에 시간을 할애하려는 남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그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가정과 회사에 모..
[대장암 일기] 10. 생각 보다 깊은 곳 끝이 보이지 않아 느낌이야 어찌되었든, 나에게 항암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내가 병원의 주사실을 찾을 때 마다 나보다 많은 양의 항암제 투여를 받으시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행복한 편이라고, 나는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위로는 위로일 뿐, 항암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아무리 주사 몇개 정도의 양 밖에 되지 않는 항암제였지만 후유증이 없지는 않았다. 사흘 정도가 지나자 메스꺼운 느낌이 시작되었다. 굉장히 메스꺼운 이 느낌은 무엇인가 체해서 구토가 나오기 직전의 느낌이었지만 정확히 같지는 않았다. 뭔가 더 화학약품 냄새가 온 몸에 진동하는 듯 했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 체한 느낌은 구토를 하고나면 없어지거나 나아질 것 이라는 희망적인 느낌이 있는 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느낌은 한 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