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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5. 괜찮을거야 수술2 아들은 수술을 잘 받고 있을까. 아내와 나 며느리 이렇게 셋은 대기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대기실에 하나 뿐인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수술자 명단에 아직 아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저 수술하는 환자들의 이름만 반복되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이 지날 수록 대기실에 사람은 북적북적 해져 가지만, 절대 소란스러워 지지 않는다. 모두 같은 자세로 하릴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갈 수록 이 곳의 공기가 무거워져 가는 탓인지, 여기저기 작은 한숨소리가 지나간다. 드디어 아들의 이름이 수술자 명단에 올라왔다. 수술이 시작되었나 보다. 이제 세 시간만 아들이 잘 버텨 준다면, 다시 건강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
[대장암 일기] 14. 친구 답답해 병원. 집. 가족. 벌써 몇달 째, 이 세 가지 테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바깥 생활을 하기에는 나의 장 상태가 아직은 많이 불안하다. 언제 변의를 느끼게 될 지도 모르고, 가스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바깥 탈출을 강하게 요구해댔다. 비단, 이런 수술 후유증들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계속되는 항암으로 검게 변해버린 피부와 빠져버린 머리때문에라도 어디 나가서 누굴 만날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감옥을 벗어나고 싶다. 누군가 찾아와 주었으면, 먼 발걸음이겠지만 달려와서 나를 이 곳에서 꺼내주었으면 좋겠다. 나를 꺼내 주지는 않아도 좋다. 다만, 내 이야기를 들어만 주어도 좋겠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도 좋다. 바깥에서 살아가는 너희들의 이야기라도 들려주었으면..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4. 잘 견뎌다오 수술 아들의 수술이 결정되고 입원을 했다. 우리 가족중에 누군가가 이렇게 큰 수술로 입원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지금 서울대학교 병원의 한 병실에 모두 모여있다. 수술이 시작되기 전 까지는 며느리가 옆에서 아들 곁을 지키기로 했다. 둘을 남겨놓고 우리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큰 아이 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이" 손녀딸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딸이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들과 병실에 같이 있어주지 못한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병실에서 잘 있는 것일까. 수술을 앞두고 무서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녀 딸의 재롱을 보는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 같다. "휴우......" "한숨 쉬지 마!" 나도 모르게 나온 ..
[대장암 일기] 13. 함께 혼자가 아니야 누나의 중재 이후에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집안 분위기는 의외의 복병에 고전하고 있었다. 우울증 항암한지 두달 째가 되자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아침 머리를 감고 나서 유난히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에 잡힌 한 움큼의 머리카락에 애써 웃음보이며 드디어 부작용이 시작되었노라고 나 조차 신기해 했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은 점점 불쌍한 아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퇴원 후에 말라버린 몸이 항암으로 식욕이 떨어진 탓에 좀처럼 복구되지 않았다. 그리고 빠져가는 머리. 검게 변하고 있는 내 피부. 게다가 피부는 전부 트기 시작했다. 내 모습 여기저기에 투병중이라고 씌여있었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이따금씩 거울을 ..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3. 그래도 다행입니다. 불면증 "안녕히 주무세요." 아들내외가 방으로 와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다. 잘 자라니. 지금 이 상화에서 안녕히 잘 잘 수 있을까. 한평 남짓한 공간에, 그마저도 책상과 책장으로 꽉 들어차 아내와 내가 발을 겨우 뻗고 누울 수 있는 이 공간에 아내와 내가 남겨졌다. 이부자리를 펴고 아내와 나는 천정을 바라보고 누웠다. 다행히 우리부부가 누워있는 서재방에 붙어있는 엘리베이터가 오르고 내리는 소리가 숨이라도 쉴 수 있게 만들어준다. 가만히 누워 보이지도 않는 천정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뱉어본다. "왜 그랬을까?" "...뭐가...?"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겨우 대답을 한다. "왜, 우리 아들이 아플까?" "......" 괜한 푸념에 아내의 등이 파르르 떨려온다.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