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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대장암일기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5. 괜찮을거야

수술2


 아들은 수술을 잘 받고 있을까. 


 아내와 나 며느리 이렇게 셋은 대기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대기실에 하나 뿐인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수술자 명단에 아직 아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저 수술하는 환자들의 이름만 반복되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이 지날 수록 대기실에 사람은 북적북적 해져 가지만, 절대 소란스러워 지지 않는다. 모두 같은 자세로 하릴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갈 수록 이 곳의 공기가 무거워져 가는 탓인지, 여기저기 작은 한숨소리가 지나간다. 드디어 아들의 이름이 수술자 명단에 올라왔다. 수술이 시작되었나 보다. 이제 세 시간만 아들이 잘 버텨 준다면, 다시 건강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세 시간 반이 지났지만, 아들의 이름 옆에는 '수술중'이라는 글자가 그대로 남아있다. 수술이 끝날 시간이 넘었는데, 왜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까. 이제 수술 마무리를 하고 있는 거겠지. 무슨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정확히 예상 시간에 끝날 리는 없잖아. 마음을 다독여 본다. 네 시간쯤 지나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환자 가족들이 하나 둘씩 환자들의 이름을 듣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제 모니터에는 5명도 채 안되는 이름만 남아있다. 여전히 수술중이다. 왜 끝나지 않는 걸까. 한 시간 정도는 늦어질 수 있는 거겠지. 그래도 수술이고, 작은 수술도 아닌데. 이제 곧 마무리가 되겠지. 아내와 며느리의 어깨를 가만히 다독여 주었다. 이제는 예정된 시간 보다 두 시간이 더 지났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수술 시간이 예정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길어지는 것이라면, 마무리가 길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잡아 흔든다. 대기실 모니터에도 이제 아들의 이름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수술중'이라는 글자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바짝 든다.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가슴에서 시작된 진동이 내 귀에 도달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조금씩 눈물을 보이기 시작한 두 여인들을 뒤로 하고 나왔다. 대기실을 감싸고 있는 이토록 무섭고 무거운 공기. 수많은 보호자들이 남기고 간 한숨들. 눈물들. 걱정들. 그 모든 것들이 남겨진 그대로 남겨진 우리 가족들의 어깨 위로 내려 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기들이 더 내려갈 수 없도록 그것들을 떠 받들고 있는 우리들의 걱정과 한숨. 잠시 밖으로 나와서 숨을 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잠시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대기실과 화장실의 공기가 다르지 않았지만, 이 곳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얼마나 고맙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대기실 앞으로 가니 며느리가 나를 급하게 부른다. 


 '무슨 일이지?'


 우리들의 이름을 부른 모양이었다. 얼른 대기실 모니터로 눈이 갔다. 


 '회복중'


 다섯시간 반만에 아들의 수술 상태가 바뀌었다. 얼른 두 여인들을 따라서 의사선생님께로 갔다. 의사선생님께서 방금 막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 우리 가족 앞에 섰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섯 시간 반 동안이나 마음졸이며 기다렸던 저 한마디가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 속으로 한다던 저 말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눈시울을 붉힌 채 연이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오늘 수술을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수술은 말씀드린대로 S결장을 발병부위를 기준으로 위로 15cm, 아래로 15cm 총 30cm를 절제했습니다. 그리고 복강경 수술로 장 절제하고 봉합하는 과정에서 배꼽 아래쪽 신경들을 절단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나이가 젊어서 그쪽 신경들을 모두 이어주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수술중에 림프절에 전이가 된 것으로 확인이 되어서 해당 림프절을 모두 긁어 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꼽 아래쪽 신경이 좀 끊어져서 다시 이어주는 수술을 추가로 진행했습니다. 그 부분 때문에 수술 시간이 좀 길어졌습니다. 대부분 신경은 다시 이은 것 같은데, 정상적으로 성 생활이 될지는 차도를 좀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수술해 보니 종양이 좀 커서 항암은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 한마디. 수술이 길어진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라 아들의 신경을 이어주는 것 때문이라는 의사선생님의 설명. 이 두가지로 충분했다.


 "지금은 회복실에 있으니까, 이제 병실 올라가 계시면 곧 환자도 병실로 옮겨질 겁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병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복도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아....아파요......"


 아들 목소리다. 아들이다. 얼른 복도로 뛰쳐나갔다. 복도 저 끝에서 침대 하나가 의료진들에 의해서 옮겨져 오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도 않지만, 확실하다. 저기에는 아들이 누워있다. 이 녀석은 뭐가 그렇게 아픈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아프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 사내 자식이 그거 좀 아픈거 가지고 창피하게 병원이 떠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나이도 서른이 넘은 녀석이 창피한 줄 알아야지. 아무렇지도 않구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눈물이 떨어졌다.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