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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대장암일기

[대장암 일기] 14. 친구

답답해


 병원. 집. 가족. 벌써 몇달 째, 이 세 가지 테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바깥 생활을 하기에는 나의 장 상태가 아직은 많이 불안하다. 언제 변의를 느끼게 될 지도 모르고, 가스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바깥 탈출을 강하게 요구해댔다. 비단, 이런 수술 후유증들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계속되는 항암으로 검게 변해버린 피부와 빠져버린 머리때문에라도 어디 나가서 누굴 만날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감옥을 벗어나고 싶다. 누군가 찾아와 주었으면, 먼 발걸음이겠지만 달려와서 나를 이 곳에서 꺼내주었으면 좋겠다. 나를 꺼내 주지는 않아도 좋다. 다만, 내 이야기를 들어만 주어도 좋겠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도 좋다. 바깥에서 살아가는 너희들의 이야기라도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간절하게 나는 그들을 원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없이 초라한 내 지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들이 나를 불쌍하게 볼거야.'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미안해 할거야.'


 친한 친구들, 후배 몇명, 직장 동료 몇명에게서 가끔 문자가 온다. 하지만 그들도 환자에게 건낼 수 있는 인사라는 것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을 것이 당연했다. 그들은 쉽게 내 몸상태에 대해서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몸이 어떠냐는 질문들 몇가지로 나의 안부를 물었다. 나도 정해진듯한 답변들만 늘어놓았다.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얼굴 보기에는 많이 바쁘겠지...'


 나는 그들을 붙잡고 늘어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픈 것이 무슨 벼슬이라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들의 시간을 빌려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내가 암이라는 사실 자체 하나만으로도 마음의 짐을 안고 있을텐데, 내가 무슨 염치로 그들에게 여기까지 와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내게 뭔가 더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바쁜 그들에게 시간을 내어달라는 부탁이, 그들의 삶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그나마 안부를 물어주는 이들의 수고마저 끊기는 것이 아닐까 겁이났다. 나는 그들에게 왠지 '미안한'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얼마 후, 친구들이 나를 찾아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친구들이라고 해 봐야 몇명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 친구들은 내 인생의 전부다. 젊은 시절, 나의 20대를 온전히 함께 보낸 친구들. 그리고 우리의 남은 인생도 함께 보낼 것이라는 믿음에 변함이 없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이 나를 찾아온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설레는지 모르겠다. 아직 얼굴을 보려면 3주나 넘게 남았지만, 나는 그 날 외에는 다른 것들은 하나도 기다려지지 않는다. 꼬박 3주를 그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보냈다. 한번에 다 같이 보면서 옛날 이야기도 하고, 서로 욕도 좀 해 가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항암 후유증이 있었지만, 빨리 견뎌야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견뎌냈다. 그렇게 환한 얼굴로 나는 친구들을 맞았다. 나는 분명히 환한 얼굴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고나서 내 설렘과 기대는 친구들을 만나기 이전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친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워 있었다. 겉모습은 웃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잘 될거야. 괜찮을거야. 말하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밝지 않았다. 친구들과 옛날 이야기나 하고 서로 핀잔이나 좀 주어 가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나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들의 대화는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몸 상태에 대해서, 나의 미래에 대해서. 나는 결국 내 병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떠한 후유증들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답변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나의 답변들 후에 더 걱정스러워하고 더 미안해 했다. 내가 원했던 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사실, 지금 나의 상황이 그들에게 편하게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고 했어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서 확인한 것은 내가 환자라는 사실 이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내가 이들의 마음에 큰 짐을 지우고 있구나. 


 친구들뿐만이 아니었다. 이후로 만난 사람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걱정. 그들의 미안함. 그 모든 것들만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는 어느 자리에 가든 내 병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경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모든 대화의 끝은 그들의 안쓰러워하는 눈빛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한 동안은 이러한 눈빛들로 인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는 그들의 괜찮지 않은 표정에서 오는 여운은 생각보다 꽤 오래 지속됐다. 그리고 한 동안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었다. 


 내가 아프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