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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파일럿2018] 구매 후기(번외편) - 파일럿 앓이

파일럿 앓이

 

 5천만원이 넘는 돈은 나에게는 역시나 너무나 큰 금액이야. 둘째가 생겼다고 해서 저렇게까지 큰 차를 살 필요가 있을까? 아파트 대출도 있는데, 더 빌릴 돈도 없잖아. 월급이 오른다고 해도, 둘째 낳으면 둘째 키워야 할 돈도 부족할지 몰라. 여유자금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도 차는 파일럿이 진짜 좋긴 한거 같은데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면서부터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저 생각을 한다고 해서 제 사정이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은 1도 없죠. 그래도 나름대로의 논리를 세우기 위해서 이 고민 저 고민을 해 봅니다. 얼마나 고민을 더하더라도 사실 파일럿 구매는 저에게 어느 정도 무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르는 월급은 둘째 양육에 써야 하고, 여유자금이 없는 생활은 뭔가 불안하거든요. 그래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차라서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 우리 사정에 파일럿은 좀 무리겠지? 산타페나 쏘렌토를 그냥 풀옵션으로 사는게 낫겠어

 마음대로 해.”

 “……”

 

 아냐, 그래도 월급도 오를거고 둘째 낳으면 축하금도 주고 돈 생기는 곳이 좀 있잖아?”

 “……”

 

 아니다. 깔끔하게 접자한 동안 이 차가 내 차가 될 생각에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어.”

 “……”

 

 한참을 듣던 아내가 한마디 던집니다.

 

 너 누구니?”

 

 

 파일럿을 사고는 싶고, 여건은 안될지도 모르는 것 같고, 아니 안되는 것 같고. 그래도 이 기회가 아니면 이정도의 차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있을지 모르는데, 이 기회를 놓치기는 싫고. 현실에 순응하며 의기소침해졌다가, 행복회로를 풀 가동하며 파일럿 차주로써의 꿈을 놓지 않고 버티기도 하며 행복해 하기도 합니다. 부천 집에서 일산까지 바람쐬러 가는동안 수도 없이 바뀌는 제 모습을 보며 아내가 아무래도 조울증인거 같다고 정신좀 차리라고 합니다. 제가 봐도 제가 이상합니다. 이렇게 두가지 모드를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에는 풀이 죽어버렸습니다. 일산 가는 30분정도 되는 시간동안 아무런 힘이 나지를 않아요. 우리 가족 현실 순응 프로젝트. 쏘렌토 차 보러 가는 길이었거든요.

 

 내가 이 차를 봐서 뭐하나…’

 아냐, 이게 현실이야. 이 차 풀옵션으로라도 허기를 좀 채우면 되지

 

한번 나간 정신이 쉽게 돌아오지 않네요.

 오전 9시쯤부터 나가있던 정신은 2시 반쯤 느즈막한 점심을 먹을 떄 까지 돌아올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3시 반쯤 포드 매장에 시승신청을 하면서 슬슬 제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래, 뭐 정해진건 아직 아무것도 없잖아.’

 

 결국 내가 지금 이런다고 해서 내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것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불확실한 것들이 확실해 지기 전 까지는 아무것도, 그 어떠한 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미리 실망할 필요도, 미리 행복할 필요도 없었죠.

 

 상황봐서 안되면 쏘렌토에 만족하고, 상황이 나아지면 파일럿 사자.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너무 목메고 고민해봐야 되는 것도 없으니까

 이제 돌아왔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