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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일기] 17. 방심 방심 “여보세요.” 아내의 핸드폰이 울리고 조심스럽게 아내가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몇 마디 나누더니 내 안부를 전화기 너머로 전한다. 내 상태를 알고 걱정하고 있는 그 누군가 일 것이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남편을 간병하는 아내를 걱정하는 그 누구. 아내는 연신 ‘네’만 반복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말을 전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아내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분, 오라버니가 췌장암 말기였대. 그런데 치료를 다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갔대. 원래는 시한부로 5개월 선고 받았는데, 지금은 5년이 넘게 살아계신대.” 암 판정을 받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버리셨단다. 그리고 모든 것을 ..
[대장암 일기] 16. 어리광 마지막 항암 항암 주사를 처음 맞고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억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냄새. 그 느낌. 그 공기. 모든 것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은 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벌써 7개월이나 지났다. 6차 항암 계획의 마지막인 여섯 번째 항암이지만, 적응 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마지막 주사만 맞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나건만, 그 주사를 맞으러 가는 길은 처음 주사실로 올라가던 발걸음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휴우……웩!” 마음을 다잡는다고 크게 한숨을 쉰다는 게 그만 주사실의 냄새를 한번에 모두 들이키고 말았다. 주사를 맞으면 맞을수록 작은 냄새에도 민감해 진다. 더구나 가장 맞기 힘든 일주일의 마지막 항암주사. 그리고 이번엔 아내가 아닌 부모님과 함께 치료를 받으러 왔..
[대장암 일기] 15. 하루#1 항암 벌써 해가 중천이다. 항암을 받는 날은 되도록 출근시간을 피해서 이동한다. 조금이라도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나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한다. 벌써 항암도 4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항암주사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부터 항암주사 생각에 벌써 구토가 올라오는 것 같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운전도 직접 하고 이동하건만, 이미 머릿속은 항암주사를 맞는 장면을 구간반복하는 것 외에 다른 장면이 떠 오르지 않는다.병원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느껴지는 소독약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겨우 참고 주사실로 올라가면, 항암제 특유의 냄새가 내 비위를 거슬리게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풍기는 소독약 냄새, 채혈을 할 때 맡게 되는 소독약냄..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5. 괜찮을거야 수술2 아들은 수술을 잘 받고 있을까. 아내와 나 며느리 이렇게 셋은 대기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대기실에 하나 뿐인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수술자 명단에 아직 아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저 수술하는 환자들의 이름만 반복되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이 지날 수록 대기실에 사람은 북적북적 해져 가지만, 절대 소란스러워 지지 않는다. 모두 같은 자세로 하릴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갈 수록 이 곳의 공기가 무거워져 가는 탓인지, 여기저기 작은 한숨소리가 지나간다. 드디어 아들의 이름이 수술자 명단에 올라왔다. 수술이 시작되었나 보다. 이제 세 시간만 아들이 잘 버텨 준다면, 다시 건강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
[대장암 일기] 14. 친구 답답해 병원. 집. 가족. 벌써 몇달 째, 이 세 가지 테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바깥 생활을 하기에는 나의 장 상태가 아직은 많이 불안하다. 언제 변의를 느끼게 될 지도 모르고, 가스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바깥 탈출을 강하게 요구해댔다. 비단, 이런 수술 후유증들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계속되는 항암으로 검게 변해버린 피부와 빠져버린 머리때문에라도 어디 나가서 누굴 만날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감옥을 벗어나고 싶다. 누군가 찾아와 주었으면, 먼 발걸음이겠지만 달려와서 나를 이 곳에서 꺼내주었으면 좋겠다. 나를 꺼내 주지는 않아도 좋다. 다만, 내 이야기를 들어만 주어도 좋겠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도 좋다. 바깥에서 살아가는 너희들의 이야기라도 들려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