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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일기] 20. 출발 세상 밖으로 2015년 5월 13일. 오전 5시. 핸드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아직 나가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람을 일찍 맞춰 놓았다. 내가 눈을 뜨기가 무섭게 아내도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길게 자란 수염을 정리했다.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은 옷을 입고 머리를 말렸다. 혹시 빠트린 것이 있는지 가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오전 5시 30분. 아직도 집을 나서려면 30분이나 남았다. 1년 3개월이나 지났지만, 그 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이 시간. 집을 나서기 전의 이 시간과 과정에는 변한 것이 없다. 나는 다시 알람을 5시 30분으로 맞췄다. 오전 6시 “잘 다녀와.” “응. 도착해서 전화할게.” 아내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하고 집을 ..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6. 괜찮다. 하루 “여보세요.” “……흐흑…”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들의 수술이 끝나고 난 뒤부터 전화만 하면 아내는 울기부터 한다. 멀리서 전화로만 안부를 묻고 있는 나에게 아들에 대한 걱정 말고도 아내의 눈물은 또 다른 그 무엇이었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져 온다.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부디 힘을 내 주길. 부디 조금만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길. “……밥은…?” “어, 먹었네. 잘 먹고 있응께 그건 걱정 안 해도 되네.” 겨우 대화는 식사안부와 몇 가지 집에서 해야 할 잔 심부름 정도로 끝이 났다. 전화를 끊고 나니,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들 수술이 끝나고 며칠 후에 곧장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너무 오래 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아들 곁에서 해 ..
[대장암 일기] 17. 방심 방심 “여보세요.” 아내의 핸드폰이 울리고 조심스럽게 아내가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몇 마디 나누더니 내 안부를 전화기 너머로 전한다. 내 상태를 알고 걱정하고 있는 그 누군가 일 것이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남편을 간병하는 아내를 걱정하는 그 누구. 아내는 연신 ‘네’만 반복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말을 전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아내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분, 오라버니가 췌장암 말기였대. 그런데 치료를 다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갔대. 원래는 시한부로 5개월 선고 받았는데, 지금은 5년이 넘게 살아계신대.” 암 판정을 받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버리셨단다. 그리고 모든 것을 ..
[대장암 일기] 16. 어리광 마지막 항암 항암 주사를 처음 맞고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억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냄새. 그 느낌. 그 공기. 모든 것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은 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벌써 7개월이나 지났다. 6차 항암 계획의 마지막인 여섯 번째 항암이지만, 적응 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마지막 주사만 맞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나건만, 그 주사를 맞으러 가는 길은 처음 주사실로 올라가던 발걸음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휴우……웩!” 마음을 다잡는다고 크게 한숨을 쉰다는 게 그만 주사실의 냄새를 한번에 모두 들이키고 말았다. 주사를 맞으면 맞을수록 작은 냄새에도 민감해 진다. 더구나 가장 맞기 힘든 일주일의 마지막 항암주사. 그리고 이번엔 아내가 아닌 부모님과 함께 치료를 받으러 왔..
[대장암 일기] 15. 하루#1 항암 벌써 해가 중천이다. 항암을 받는 날은 되도록 출근시간을 피해서 이동한다. 조금이라도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나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한다. 벌써 항암도 4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항암주사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부터 항암주사 생각에 벌써 구토가 올라오는 것 같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운전도 직접 하고 이동하건만, 이미 머릿속은 항암주사를 맞는 장면을 구간반복하는 것 외에 다른 장면이 떠 오르지 않는다.병원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느껴지는 소독약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겨우 참고 주사실로 올라가면, 항암제 특유의 냄새가 내 비위를 거슬리게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풍기는 소독약 냄새, 채혈을 할 때 맡게 되는 소독약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