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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보

[암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2. 정신적 스트레스 - 두려움으로부터

정신적 스트레스

 - 두려움으로부터


 대장암 판정을 받던 날은 이제 인생에서 절대 지울 수 없는, 절대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별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날 아침의 공기.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가던 그 모습. 내시경 검사가 끝나고 의사선생님께서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당부하던 그 눈빛. 집으로 돌아오던 그 막막함. 참다가 터져버린 울음에 안아주던 아내의 따뜻한 어깨. 1년이 지났지만, 방금 일어난 일 처럼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대장암 선고를 받고 죽음의 공포를 바로 느끼거나 삶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막막함으로, 그리고 그 막막함은 점점 삶에 대한 막막함으로 번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서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내게 되어버렸죠. 흔히 큰 사고를 겪게 되면 피해자 혹은 환자들이 흔히 겪는 증상들을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만한 사고를 겪었을 때에 비슷한 상황에서 환자가 받는 극도의 불안감을 초래하는 스트레스를 말하죠.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사고를 겪은 모든 환자들이 이러한 증상을 겪는다는데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암 환자가 이러한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을 것이라고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저 '큰 충격'을 받은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암 환자의 현재 상태가 어떠하든, 암 판정을 받은 그 날의 기억을 잊고 사는 환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늘 '재발'의 위험 속에서 사소한 몸의 이상에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일 것입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저는 수술 후에 수술부위가 아려오면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습니다. 소화기계통인 대장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기 때문에 먹는 것에도 굉장히 민감했습니다. 대장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기때문에 배변활동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배변을 할 때마다 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 서늘한 생각들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암 환우들에게 일반적인 생활중에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별것 아닌 통증은 마치 자동차 사고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사고가 나자마자 다시 차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소화기계통에 문제가 있는 암 환우들의 경우에는 매일매일의 밥상과 배변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아무래도 소화기계통의 암은 식습관에 의한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있기도 하고, 특히 수술 후에는 식습관에 따른 소화기계통의 반응이 민감해 지기 때문이죠. 수술 부위가 아플 때 마다 '수술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혹시 암이 재발된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환자 본인과 간병인 혹은 환우 가족들은 반드시 잘 알고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그 누구도 큰 교통사고를 겪어 교통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사람에게 다시 같은 교통수단을 탈 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극복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죠. 교통수단을 이용해도 안전하다. 충분히 주의한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힘들다면 당분간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자. 환자에게 힘을 주는 말들로 환자가 충분히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데에 전혀 인색함이 없습니다.


 암환자에게는 어떻습니까? 재발을 조심해야 한단다. 먹는 것에 항상 신경을 써야해. 이런 것은 먹으면 안돼. 이 음식은 항암효과가 좋으니 많이 먹어야해. 운동은 반드시 해야한다. 이 모든 조언들이 수술 직후에 환자에게 쏟아집니다. 이 조언이 틀렸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언을 받을 때 마다 환자들은 '죽음'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좀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환자의 가족들과 간병인들이 '보다 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죠.


 우선, 부정어를 빼 봅시다. 

 '안돼.', '먹지마', '하지마' 등의 단어를 선택하기 보다는 '이렇게 행동을 해 보는게 어떨까?'라는 권유형으로 제언을 해도 그 의미는 충분히 전달이 됩니다. 다만, 조언을 하는 사람이 의미전달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될 뿐이죠. 부정어를 쓰게 되면 듣는 입장에서도 부정어에 대한 부분을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부정어로 의사를 전달하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죠. 중요한 것은 '내 의사를 환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의사를 환자에게 스트레스 없이 전달하는 것'입니다.


 두번 째로, 용기를 줍시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이야기를 한 바 있듯이, 지금 암환자가 고통을 받는 이유를 한가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소화기계통 암환자에게 '이제 기름기 있는 음식은 안돼', '이제 고기는 절대 먹으면 안돼' 라는 말은 부정어를 차치하고라도 용기와 희망을 꺾어버리는 말이 됩니다. 마치, 교통사고를 겪은 사람에게 '넌 이제 교통수단은 절대 못타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정량을 적당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횟수와 시기는 어느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환자들이 지금 하면 안되는 행동이지만, 그 횟수와 시기를 조절한다면 실행할 수도 있는 행동들을 찾아보세요. 하라고 해도 그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환자들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잘 치료받고 잘 회복하면 그러한 것들을 조절하며 할 수 있다는 희망이 환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마지막으로, 환자를 혼자 두지 마세요.

 자동차사고를 겪은 환자가 다시 자동차를 타는데 혼자 가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암환자에게는 식이조절을 시키고 금연을 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간병인이나 가족들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분은 없으시겠죠? 당뇨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께서는 간혹 '초콜릿'을 잔뜩 드시면서 대장암환자인 당신 아들이 튀김 한조각 먹는 것에도 화를 내고 단호하게 안된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암 환자를 물리적으로 혼자두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암환자를 앞에 두고 암환자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환자를 혼자 남겨두는 것입니다. 총기사고를 겪은 가족에게 장난감총으로 장난을 치는 것과 전혀 다를게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암환자에게 있어서 '암판정'은 인생일대의 '사고'입니다. 이 트라우마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 역시 환자의 몫입니다. 극복하는 것을 온전히 환자의 몫이라고 이야기 할 것이라면 조언은 필요하지 않겠죠. 하지만 조언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뭔가 도움을 주기로 결정했다면 이 극복과정이 오로지 환자의 몫만은 아니게 됩니다. 조언만 하고 나는 그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면, 조언도 함께 버리시기 바랍니다. 환자의 스트레스는 가족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심각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 마음에 귀를 기울여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