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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보

[암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1. 암환자의 적 - 카더라

암환자의 적 

 카더라

 

 대장암 판정을 받고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필자는 S결장에 악성종양이 발견되어 발병부위 전후로 15cm, 30cm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잘라낸 조직검사를 시행한 결과 대장암 2기로 최종 판정되었습니다. 이때 제 나이가 32세밖에 되지 않는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혹시 모를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고자 항암치료를 권유 받았습니다. 적극적인 치료를 하자는 의사선생님들의 권유로 인하여 6개월 동안 항암 주사치료를 받았습니다. 항암이 끝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암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흔히 겪는 시행착오를 우리 가족도 겪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몸에 좋다는 것들을 찾아 다니고, 몸에 좋지 않는 것들은 무엇들인지 알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암환자의 가족들이 정보를 찾느라 발에 불이 날 지경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암에 대해서 아무런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환자와 가족들은 혹시나 모를 죽음이라는 그림자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몸에 좋다는 약’. 누군가가 치료효과를 보았다는 효과 좋다는 즙’. 그리고 그 전에는 챙겨보지도 않았던 건강관련 프로그램들을 챙겨보다 보니, 몸에 좋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모두 챙겨먹어야 할까요? 이 모든 것을 챙겨먹으면 정말 병이 나을까요?

 

 과연 당신은, 이 모든 정보를 정말 믿습니까?

 

 암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정보들이 너무 많습니다. 몸에 좋다는 물질들, 음식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요즘 같은 웰빙 시대에 항암효과를 가진 음식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암은 뭔가를 덜 먹었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사실 무엇을 먹었기 때문에 암에 걸렸다. 라는 논리는 맞지 않죠.)


 특정 화학물질이 섭취되거나 호흡기를 통하여 흡수될 경우에 발병확률이 높은 것이 암입니다. 이러한 특정 화학물질이라는 것도 100% 암을 일으키는 것도 아닐뿐더러, 알려진 화학물질의 종류는 극히 제한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암은 왜 생기는 걸까요?

 

 암 환자이시거나, 암 환자의 가족임에도 이러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면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 보다 더 반성을 해야 할 사람은 바로 어디선가 들은 듯한정보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환자나 간병인들입니다. ‘소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렇대’,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런 거래’, ‘야식을 많이 먹으니까 그런 거야’, ‘맨날 술을 먹으니 그렇지이런 무책임한 말들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좋지 않은 식습관이 암 발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흡연이 암 발병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위암 간암에 걸릴 확률도 높은 것이 사실이죠. 뭐가 문제냐 구요? 소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들이 모두 암에 걸리나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다 암인 걸까요? 야식을 좋아하지만 암에 걸리지 않은 제 지인들은 어떻게 된 걸까요? 알코올 중독자들은 모두 암 센터에 보내져야 하는 걸까요?


 여러분은 암이 어떠한 기전으로 발생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정확한 암의 기전을 알고 계시다면 어서 논문을 작성해서 발표하세요. 노벨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의학계에서도 정확한 암의 기전은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대략적인 암의 기전이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추정되고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기전들에 대해서라도 알고 계신 것이 있나요?


 일전에 어떤 췌장암 환우께서 그 딸과 다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췌장암 환자인 아버지는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딸은 당연히 그 반대를 주장하고 있죠. 딸이 처음부터 그 약을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딸은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이런저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처방 받은 약을 모두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먹는 약이 암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이야기 했죠. 그러나 돌아오는 아버지의 말에 딸은 기운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의사가 먹으랬어

 

 저희 가족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택배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야채수라는 것이었죠. 그냥 여러 가지 야채를 물에 넣고 끓인 ()’개념의 액체를 포장해 놓은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농축액의 섭취에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과다로 농축된 액체의 섭취가 암세포 성장에 기인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때문이었지요. 어머니의 주장은 저와 부딪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암환자인데, 이거 먹고 지금도 잘 살아있대

 

 이 두 예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확하지 않은 정보입니다. 당신이 간병인이든 암환자이든 상관없습니다. ‘무엇이’, ‘어떠한원인으로 인해서 몸에 좋은지 알고 있습니까? 그럼 첫 번째 예에서 환자의 딸이 의사보다 정확한 것이냐 구요? 아닙니다. 암 환우인 아버지는 딸에게 보다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반박했어야 맞습니다. 자신의 병을 알고, 자신에게 처방해 준 약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서 먹어야 하고, 암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환자의 가족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딸은 나름대로 자신이 공부한 것에 대해서 논리를 펴고 있지만, 정작 환자인 본인의 주장은 의사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 이외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저희 가족들의 예는 이제 누가 봐도 잘못되었지요? 제가 농축액의 섭취에 겁을 먹게 된 것도 누군가의 말에 따른 논리일 뿐이었습니다. 이게 그럴 듯 하거든요. 어머니의 논리도 누군가의 말에 따른 추정이지요. 둘 다 공부는 하지 않고,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로 한 생명을 좌우할 지도 모르는 민간처방의 선택을 놓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암 판정을 받고 난 이후에 얼마 동안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병이 왜 나에게 왔을까라는 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머릿속에 채워 넣고 있었지요. 그리고 가족들은 이런저런 좋은 것들을 알아오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 근거 없는처방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정보들이 수집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서 머릿속에 한 권의 책으로 엮기 시작합니다. ‘근거 없는 책한 권이 발행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이런 정보들은 1년이 넘게 접하고 있지만, 매번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니까요.


 이것은 마치 시험 문제를 틀려놓고, 그 문제가 틀렸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옆 친구에게 정답만 듣고 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응용되어 나온다면 또 틀리겠지요. 암환자에게 있어서 이 문제의 중요도는 시험문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건 생명을 다투는 일이니까요.

 

 환자만 공부를 해서도 안되고, 간병인만 공부를 해서 될 문제도 아닙니다. 서로 함께 공부 해야 합니다. 환자든 간병인이든 어느 한쪽이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한 쪽이 공부해서 차근차근 다른 한쪽에게 알려주면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 의견충돌이 빚어진다면, 이전과 같이 소모적인 의견충돌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규칙 하나만 정해 놓는다면 말이죠.

 

 카더라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