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치를 넘어서
대장암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대장암 수술을 위한 입원을 결정하는 외래에서 뜻밖의 아픔과 마주하게 되었다. 입원을 하기로 결정하고 진료를 마치던 그때, 의사선생님은 옆에 있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서 바지와 속옷을 내리라고 했다.
"뭐지...?"
나는 옆으로 돌아 누워서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새우자세로 누웠다. 그리고 뭔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잠시 뒤를 돌아보았을때, 뭔가 시트콤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의사선생님은 이미 위생장갑을 왼손에 끼우시고 계셨고, 간호사는 친절하게 장갑의 검지와 중지에 로션처럼 보이는 무엇인가를 듬뿍 발라주었다. 의사선생님은 오른손으로 내 왼쪽 엉덩이를 최대한 들어올리고 장갑을 낀 왼손으로, 정확히 왼손의 검지와 중지를 내 항문 깊숙히 넣으셨다. 어느 정도의 고통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고통은 그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일정 수준 손가락이 들어오고나서 이제 됐을 것이라고 안심하던 그 때에 손가락은 몇 cm를 더 들어오고있었다.
'아!!'
놀란마음에 나지막히 외치던 그 순간에도 손가락은 멈출 줄을 모르고 장까지 파고 들 기세였다. 한참을 더 들어온 후에야 의사선생님의 진찰은 끝이났다. 그리고 손을 뺀 의사선생님의 왼쪽 장갑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암 발병위치가 직장에서 가까운 경우 의사선생님이 손으로 해당 부위를 직접 만져서 진료를 하기도 한단다. 진료로 인해서 장이 아프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발병위치를 직접 만졌다기보다는 근처를 만져서 출혈여부를 확인했던 것 같다. 여하튼 너무 친절한 진료(?)덕분에 고통을 호소하며 눈물을 찔끔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입원을 하고 나서는 수술까지 그냥 대기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관장약. 대장내시경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물에 타서 먹는 그 관장약을 또 먹어야 한다. 2주 전에 내시경검사를 하면서 먹었는데 이걸 왜 또 먹으라는걸까. 발병 위치를 수술 전에 정확히 잡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다행히 비위가 그 정도는 견딜만 했기때문에 주저없이 약을 먹기 시작했다. 250ml씩 8번.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올랐다.
"나 내시경 한지 2주도 안됐는데, 또 수면으로 내시경을 할 수 있나?"
"글쎄......"
아내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하는 순간 뭔가 불안해졌다.
"설마 비수면은 아니겠지?"
"에이...설마..."
약을 거의 다 먹었을 때 즈음,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제가 2주 전에 수면 내시경을 했는데 내일 또 수면 내시경을 하나요?"
"아뇨, 비수면으로 해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러한 것이 일상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는 저런 말투는 뭔가 좀 서운하다. 여하튼 비수면이란다. 느낌이 이상할 것 같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윤형빈이라는 개그맨이 비수면으로 대장 내시경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프다고 하지는 않고 그냥 느낌이 이상하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뱃 속에 뱀이 기어다니는 느낌이라고 했다. 뱃속에 뱀이 기어다녀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느낌을 이야기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런 느낌이란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뱃속에 뱀이 기어다니는 상상을 해 봤다. 여러가지로 느낌을 상상해 보고 아픈 게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 최대한 상상을 해 봤다. 이런 상상을 할 때에는 최대한 안좋은 쪽으로 상상을 해 놓아야 실제에서 덜 아프다.
어떤 느낌일까?
당일 아침, 어제의 마인드 컨트롤 덕인지 마음이 한결 편하다. 뭔가 내가 못 참을 정도로 아플 것 같지는 않다.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내시경실로 향했다. 나는 다시 외과 의사선생님이 입원결정 전에 진료에서 말씀하셨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손이 아닌 기계가 항문을 통해 내 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수면인 덕분에 내시경장비를 직접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어쨋든 내시경검사는 시작됐고, 나는 이내 뱃속에 돌아다니는 뱀의 종류를 너무 한정지어 상상했다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이 뱀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몸이 컸다. 조금의 움직임만으로도 뱃속이 꽉 찬 느낌이었다.
'이게 계속 들어온다고?'
걱정이 되긴 했지만 느낌이 좀 묵직할 뿐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통은 꼭 방심할 때 찾아오는 법이지. 시작한지 1분도 되지 않았는데 배가 아프다. 복통이라는게 이런거구나. 바늘로 장을 쿡쿡 쑤셔대는 것 같다. 그것도 작은 바늘이 아니라 큰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 한군데를 찌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군데를 동시에 찌르는 것 같다.
'어떡하지'
아직 시작도 안했을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아프면 어떻게 견딘단말이지?
'으으으으...'
나지막이 신음을 내 뱉는 것으로 고통을 호소하고있었다. 내가 이정도 아프다고 해서 의사들이 그만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참아야 했다. 의사들은 내시경장비를 계속 찔러 넣어보더니 자세를 바꿔보라고 했다. 나는 똑바로 누워서 왼 무릎을 올리고 그 위에 오른다리를 올렸다. 이렇게 누우니 뱃속에 있는 뱀이 더 커진것 같다. 그리고 아픔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왠지모르게 애국가를 부르면 고통이 잊혀질 것 같았다. 나지막이, 애국가를 부르면서 고개는 좌로 우로 무한반복하며 흔들었다. 어느 정도 아프다는 표시는 해야할 것 같았다.
"이거, 잘 안들어가네?"
"네?"
"환자분, 이게 혹에 걸려서 장비가 안으로 더 안들어가요. 좀만 더 참아보세요. 이거 끝까지 넣어야돼요."
"끝까지요?"
"네, 대장 끝까지 넣고 빼면서 볼거에요"
그렇구나. 내시경은 끝까지 넣고 빼면서 보는거였나보다. 그런데 나는 암덩어리때문에 내시경장비가 아직 들어가지도 못했단다. 난 S결장에 암이 발병한 경우라서 직장에서 꽤 가까운 위치에 암덩어리가 있다. 고로, 내시경 진입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이야기다. 아픔을 참고 또 참았다. 세상에서 지금까지 느꼈던 아픔 중에 가장 아팠던 것 같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찍으라면 이 고통만 없다면 수십번도 더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손가락 끝을 칼로 베여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이러기를 10여분, 드디어 암덩어리를 장비가 지나갔다고 했다. 해당 부위를 지나가니 더 이상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약간은 불편했지만 이전 고통에 비하면 쓰다듬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수분 내로 내시경 검사는 모두 끝이났다. 20여분이 넘는 검사를 마치고 기다리고있던 가족들에게로 가서 정말 아프다고 했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면서 약간 웃음기도 있는 것 같다. 마치 내가 덤벙대다가 문지방에 발을 찧었을 때, 아내가 웃으면서 아프겠다고 걱정을 해주는 그런 모습 말이다.
<주의사항>
그러실 일은 없으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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