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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대장암일기

[대장암 일기] 4. 수술

 미처 알지 못했지


 나는 한 번도 수술을 해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발바닥에 난 사마귀인지 티눈인지를 뺀다고 국소마취를 해서 그 이상한 녀석을 제거한 게 수술이라면 유일한 수술이다. 수술 전에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떠한 절차들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있다가 수술을 받으면 되는 건가?'


 이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즈음, 간호사가 손바닥 크기만한 연고같은 것을 들고 들어왔다.


 "환자분, 이거 제모하는 약이니까 지금 하시면 되요. 바르고 나서 5분 있다가 휴지로 닦으시면 됩니다."

 "...???!!!!"


 음모를 포함하여 아랫도리쪽에 있는 모든 털을 이 약을 사용해서 깨끗하게 없애야 한단다. 복강경으로 수술을 진행할 때에 장비가 들어가야 하는 곳에 털이 있으면 안된다고 했다. 혼자서 이걸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 이건 혼자서 못한다. 누군가 내 엉덩이를 들여다보며 이 일을 해 주어야 한다. 어머니에게 이 일을 부탁드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일을 부탁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 밖에 없었다. 바로 아내였다. 아내에게 이 일을 부탁하고 나는 생에 두번 째로 누군가의 앞에서 엉덩이를 개방했다. 군 입대때 했던 신체검사에서 해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정말 5초도 걸리지 않을만큼 잠깐이라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5분을 넘게 모든 것을 아내에게 온전히 맡겨야 했다.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아직 결혼 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크게 대수롭지는 않았다. 


 "여보, 이거 다 했는데 제대로 된건지 잘 모르겠어. 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다른 사람에게 확인을 받아야 하다니. 적잖게 당황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런 수술을 해 본 사람이 주위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수술해 본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상태를 면밀히 확인하지는 못했을 것이 아닌가. 간호사도 다소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이런 분야에 있어서 의료계 종사자들은 단호하다. 자연스럽게 몇 초 정도 확인을 하더니 괜찮다고 했다. 


 수술 전 까지는 이제 당황스러운 일은 없겠지?


 오후에 수술을 집도하실 의사선생님께서 오셨다. 수술에 대해서 몇 가지 정보들을 알려주고 가셨다. 수술은 얼마 정도 진행 될 예정이라는 것과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 질 예정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정보 중에는 '장루'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장루'란 장이 없는 사람에게 장을 대신할 튜브같은 것을 착용시키는 것을 말한다. 짧게는 6개월 부터 길게는 평생 이 장루를 차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분명히 수술하는 부위는 S결장 중 발병위치로부터 위아래로 15cm씩 총30cm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로써 발생할 수도 있는 최악의 경우를 설명해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 또 마음 한 켠이 서운해 졌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는 말씀해 주시니 안심은 되지만, 서늘한 이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저녁이 되자, 간호사는 관장약과 알약 두개를 가지고 왔다.


 "금일 자정까지는 관장약 드시고 관장 하세요."


 또 관장약이라니, 2월 13일 내시경 검사를 위해서 관장약을 먹은 것을 시작으로 해서 지금 까지 8L정도를 먹었는데, 또 먹으란다. 장에 뭐가 남아있기는 한걸까.


 "깨끗하게 물처럼 변을 보시게 되면 알약을 하나 넣으세요. 좌약이에요."


 병원에서 간호사가 하라고 한 것 중에 당황스럽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좌약이라니. 어렸을 적에 몇 번 넣어본 적이 있는 기억 외에는 아예 잊고 살았다. 좌약을 또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좌약의 문제는 또한, 혼자 넣지 못한다는 데에 있었다. 이번에도 아내가 고생해 주었고,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드디어 수술 전의 모든 작업(?)은 끝난 것 같다. 이제 자고 일어나서 내일 아침에 수술만 하면 된다. 수술만 하면 되겠지. 잠깐 자고 일어나면 수술은 다 끝나있고, 난 가족들 곁에 있을거야. 그럼 한 고비가 넘어가는 것이겠지. 수 차례 되뇌이고 또 되뇌인 후에야 겨우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수술만 하면 다 괜찮아 질거야.'




 *장루 언급에 관하여*

 대장암 수술의 경우에 실제로 장을 모두 절재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가 있던 2인병실의 옆 환자는 저와 나이가 같은 30대임에도 불구하고 장을 모두 절재했다고 했습니다. 수술 후에 장루를 차고있었구요.

 장루에 대한 부분은 글을 읽으시는 환우분들이나 환우 가족분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리려고 작성한 부분이 아닙니다.

 암환자나 가족들의 경우에는 모든 정보를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갑작스러운 정보로 당황스러워 하게되면 치료과정에 있어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환자가 어떠한 정보고 걱정을 하고 있다면 미리 알고 있는 정보로 "그런 경우도 있대" 라고 말해주고 별 것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암환자에게, 치료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과 긍정적인 사고입니다.




<주의사항>

그러실 일은 없으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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