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2. 대면 준비 진정이 되지 않는 아내의 속을 달래며 다섯 시간이 넘는 운전 끝에 아들 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니 막상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한참을 차 안에서 내리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아들 내외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또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동을 끈 차 안은 나와 아내의 숨소리만으로 가득했고, 그 숨소리 조차 조심스러웠다. 나는 아내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탔다. 21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였지만, 한 없이 바닥으로 꺼져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딩동."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 후에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얼핏 문을 연 며느리 뒤로 눈에 초점을 잃은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무슨 죄인..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1. 무너지면 안된다. 전화 2014년 2월. 여느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요즘 중국어에 푹 빠져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은퇴 후에 별 달리 집에서 하는 일이 없지만, 운동과 공부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유일한 일과다. 특히, 중국 출장을 다녀와서 흥미를 갖게 된 중국어 공부는 정말이지 내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오늘도 아내는 친구와 찜질방을 간다며 나가고 없다. 은퇴 후 아내와 함께 하루를 온전히 보낼 생각을 했었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텔레비젼을 보아도 환갑을 넘긴 아내들은 이제와서 가정에 시간을 할애하려는 남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그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가정과 회사에 모.. [대장암 일기] 10. 생각 보다 깊은 곳 끝이 보이지 않아 느낌이야 어찌되었든, 나에게 항암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내가 병원의 주사실을 찾을 때 마다 나보다 많은 양의 항암제 투여를 받으시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행복한 편이라고, 나는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위로는 위로일 뿐, 항암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아무리 주사 몇개 정도의 양 밖에 되지 않는 항암제였지만 후유증이 없지는 않았다. 사흘 정도가 지나자 메스꺼운 느낌이 시작되었다. 굉장히 메스꺼운 이 느낌은 무엇인가 체해서 구토가 나오기 직전의 느낌이었지만 정확히 같지는 않았다. 뭔가 더 화학약품 냄새가 온 몸에 진동하는 듯 했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 체한 느낌은 구토를 하고나면 없어지거나 나아질 것 이라는 희망적인 느낌이 있는 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느낌은 한 번 .. [대장암 일기] 9. 다시 터널 속으로 후반전의 시작 퇴원 후 한달 정도가 지나자, 몸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서른 번도 넘게 다녔던 화장실이 열번 내외로 눈에 띄게 줄었다. 실제로 이 변화를 체감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분명히 화장실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깥생활을 자유롭게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퇴원 후 한달 정도 후에 외래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그 때에 항암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장암 3기로 판단을 받았기 때문에 몸에 남아있을 암세포의 전이를 막기 위해서는 치료를 해야한다고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있었지만, 주변에 항암치료를 받아본 사람도 없고 비슷한 경험을 들은 바가 전혀 없.. [대장암 일기] 8. 식탁과 화장실 참을 수가 없다. 병원에서 퇴원 전에 식사가 시작되었다. 이 식사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병원 밥상을 받고 나서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무의식 속에서, 암을 선고 받은 때로부터 가졌던 질문. 내가 다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이 밥상이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이유는 나도 모르게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다. 아내도 옆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흘리는 아내의 눈물이 또 다시 고마웠다. 그리고 수저를 들었다. 미음과 같이 주어진 반찬을 꼭꼭 씹어서 먹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게 음식을 다시 한번 허락하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술 후 식사를 하기 전까지..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