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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4. 잘 견뎌다오 수술 아들의 수술이 결정되고 입원을 했다. 우리 가족중에 누군가가 이렇게 큰 수술로 입원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지금 서울대학교 병원의 한 병실에 모두 모여있다. 수술이 시작되기 전 까지는 며느리가 옆에서 아들 곁을 지키기로 했다. 둘을 남겨놓고 우리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큰 아이 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이" 손녀딸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딸이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들과 병실에 같이 있어주지 못한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병실에서 잘 있는 것일까. 수술을 앞두고 무서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녀 딸의 재롱을 보는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 같다. "휴우......" "한숨 쉬지 마!" 나도 모르게 나온 ..
[대장암 일기] 13. 함께 혼자가 아니야 누나의 중재 이후에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집안 분위기는 의외의 복병에 고전하고 있었다. 우울증 항암한지 두달 째가 되자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아침 머리를 감고 나서 유난히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에 잡힌 한 움큼의 머리카락에 애써 웃음보이며 드디어 부작용이 시작되었노라고 나 조차 신기해 했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은 점점 불쌍한 아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퇴원 후에 말라버린 몸이 항암으로 식욕이 떨어진 탓에 좀처럼 복구되지 않았다. 그리고 빠져가는 머리. 검게 변하고 있는 내 피부. 게다가 피부는 전부 트기 시작했다. 내 모습 여기저기에 투병중이라고 씌여있었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이따금씩 거울을 ..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3. 그래도 다행입니다. 불면증 "안녕히 주무세요." 아들내외가 방으로 와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다. 잘 자라니. 지금 이 상화에서 안녕히 잘 잘 수 있을까. 한평 남짓한 공간에, 그마저도 책상과 책장으로 꽉 들어차 아내와 내가 발을 겨우 뻗고 누울 수 있는 이 공간에 아내와 내가 남겨졌다. 이부자리를 펴고 아내와 나는 천정을 바라보고 누웠다. 다행히 우리부부가 누워있는 서재방에 붙어있는 엘리베이터가 오르고 내리는 소리가 숨이라도 쉴 수 있게 만들어준다. 가만히 누워 보이지도 않는 천정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뱉어본다. "왜 그랬을까?" "...뭐가...?"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겨우 대답을 한다. "왜, 우리 아들이 아플까?" "......" 괜한 푸념에 아내의 등이 파르르 떨려온다. 누구..
[대장암 일기] 12. 해결사 대화가 필요해 어느 날,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운동을 다녀오셨다. 그 동안 나는 집에서 운동을 좀 하고 집안일도 이것저것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인터넷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 위에 손을 얹는 순간,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너 왜 이렇게 운동도 안하고 앉아있어? 운동해야 한댔잖아. 컴퓨터 앞에 그렇게 앉아있는게 제일 안좋다고! 왜 운동 안해!" 나에게 변명할 틈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일일이 변명을 하자니, 너무 핑계를 대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나는 하려던 컴퓨터를 포기하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족욕한다며! 아직도 안하고 있네? 왜 안해? 족욕해서 몸 온도를 올려야 한다니까!" 정신이 혼미해 지고 있었다. 이걸 일일이 다 변명을 해야하는 것일까. 곧 하려고 했다는 말..
[대장암 일기] 11. 창살없는 감옥 창살없는 감옥 스스로를 죄인이라며 우울함 속에 지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가족들을 볼 때 마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아픔이 보였다. 아내는 24시간 아픈 남편을 돌보며, 팔자에도 없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어디 잘 나가지도 못하는 생활이 불편해 보였다. 어머니는 연고도 없는 이 곳에서 아들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서 힘쓰시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둘 다 가고싶은 곳도 가지 못하고 먹고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에게는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나가서 마음 껏 친구들을 만나고 오라고도 했다. 낯선 곳에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어머니에게도 잠시 내려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바람도 좀 쐬고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들은 아픈 나를 남겨놓고 즐겁지 않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