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후, 신입사원 교육 마지막 날. 신입사원으로서의 포부와 앞으로의 자기 비전에 대한 짧은 발표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한 발표자의 대답에 강의실 내 다른 동기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 대답과 더불어 그 반응들로 인해 나는 또 다시 충격을 받았다.
“……, 그리고 앞으로 회사생활 열심히 해서 이 회사에서 임원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물론, 이 회사에서 임원이 되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지금까지의 목표이자 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답에 반응하는 수 많은 신입사원들이 그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떠한 사람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자리에 있겠다고? 어떠한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그 직위가 꿈일 수가 있는 것일까? 발표자는 함축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는’ 또는 ‘어떠한 성품을 가진’ 임원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발표한 문장 자체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보통 어린 나이의 꿈은 구체적이지 않다. 수식어나 미사여구 없이 단어 하나가 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 판사, 과학자 등의 어린이들이 말하는 꿈이 그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꿈은 구체화가 되어간다. 정의를 실현하는 판사,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의사, 혹은 빌게이츠같은 프로그래머. 자신의 꿈을 대표하는 단어 앞에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아직 자신의 꿈을 구체화 했다기 보다는 기본적인 단어에 대한 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에 그 꿈들은 단어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 또는 시나리오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예를 들면, 의사가 되어 세상에서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치료해서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억울한 일을 해소하게 해 주는 변호사, 멋진 춤으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나아가 사람들이 내 춤을 보고 즐거워 할 수 있도록 하는 비보이. 하지만 그냥 ‘임원’이라니. 임원이라는 자리에 올라간 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혹은 어떠한 모습의 사람이 되어있을 것인 것 구체화 되지 않은 체로 그것을 목표나 비전으로 삼아서는 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꿈이나마 가지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인생의 나침반이 있는 셈이니, 그러한 꿈 조차 없었던 당시의 나는 참으로 부끄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꿈이 없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살면서 내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며 살아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 꿈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고, 내 스스로에게 물어 본적도 없다. 부모님이 하라고 한 일을 하기에 바빴다. 다니라는 학원에 다니기에 바빴고, 하라는 숙제를 하기에 바빴고, 좋은 성적을 받는 일에 급급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급우들과 비교해서 뒤쳐지지 않는 성적을 받아 들고는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왔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내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자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였으나, 나는 그마저도 IT가 유행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꿈은 생각해보지도 못한 체 막연하게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했던 선택이 후회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 인생에서 나 스스로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떠한 삶을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물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발로 차 버렸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악몽처럼 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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