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이 회사에 반드시 입사해야 하는 이유를 기술하시오”
20대 후반, 내 청춘이 여물어 갈 때 즈음. 취업준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어느 기업의 자기소개서 작성란에 있던 이 질문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내가 왜 이 회사를 반드시 입사해야 하지?”
나의 목표는 오로지 ‘취업’이었지 딱히 다른 목적이 있지 않았다. 단지, 남들처럼 취업해서 평범하게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 내 나이 스물 여덟부터였다.
나는 학점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럭저럭 던지는 투수의 방어율 정도였으니까. 나는 대학에서 학과 공부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즐겼다. 동아리 회장도 맡아보고, 삼삼오오 마음이 맞는 학우끼리 노래 공연도 수 차례 했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맞는 학우들과 가지는 늦은 오후의 술자리는 대학 생활에 있어서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대학이라는 곳의 낭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지금도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지금 대학생들이 너무 취업준비에만 몰두해서 ‘사람’들과 ‘낭만’이라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을 볼 때, 슬픈 생각마저 든다. 물론, 학업과 내 믿음 사이의 시소를 수평으로 맞추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스무 군데가 넘는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보냈지만, 단 한 곳도 서류전형을 통과하지 못했다. 같이 취업준비를 하던 후배 녀석이 몇 군데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전형을 다녀와서 받아오는 교통비 명목의 돈으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늘어놓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도 잠시, 시간이 지날 수록 들려오는 친구들과 후배들의 취업소식에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나기가 꺼려졌다. 그들과 나의 처지를 비교할수록 옥죄어오는 무언의 압박감으로 인해 나는 방에 틀어박혀 우울증을 홀로 겪어야 했다. 이 상황이 어느 정도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내 학점 때문만이 아니라, 나는 내가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회사들이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이 회사에서 반드시 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사가 귀하를 반드시 채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0대의 마지막에 비로소 시작된 이 궁금증은 마치 사춘기 시절 ‘나는 무엇인가?’처럼 존재 자체에 대한 궁금증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갔다. 같이 취업준비를 하던 친구들, 아직 취업의 어려움은 본인과는 먼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후배들, 직장생활에 불만투성이인 선배들. 그 누구도 답을 주지 못했다. 그들과 술 한잔에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를 해 보아도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만남들이 있고 난 후로 답을 얻지 못한 답답함도 커져갔지만, 반대로 그들도 답을 알지 못함에 내심 ‘안심’이 되었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적어도 남들처럼은 살고 있구나.’
암세포처럼 자라나던 그 궁금증은 뜻밖의 취업으로 인해 더 이상 커 지지 않았다. 어느 기업에 운 좋게 취업을 하게 되면서부터 이 수수께끼는 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갔던 내 존재에 대한 사춘기 시절의 궁금증처럼 잊혀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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