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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3. 그래도 다행입니다. 불면증 "안녕히 주무세요." 아들내외가 방으로 와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다. 잘 자라니. 지금 이 상화에서 안녕히 잘 잘 수 있을까. 한평 남짓한 공간에, 그마저도 책상과 책장으로 꽉 들어차 아내와 내가 발을 겨우 뻗고 누울 수 있는 이 공간에 아내와 내가 남겨졌다. 이부자리를 펴고 아내와 나는 천정을 바라보고 누웠다. 다행히 우리부부가 누워있는 서재방에 붙어있는 엘리베이터가 오르고 내리는 소리가 숨이라도 쉴 수 있게 만들어준다. 가만히 누워 보이지도 않는 천정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뱉어본다. "왜 그랬을까?" "...뭐가...?"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겨우 대답을 한다. "왜, 우리 아들이 아플까?" "......" 괜한 푸념에 아내의 등이 파르르 떨려온다. 누구..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2. 대면 준비 진정이 되지 않는 아내의 속을 달래며 다섯 시간이 넘는 운전 끝에 아들 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니 막상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한참을 차 안에서 내리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아들 내외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또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동을 끈 차 안은 나와 아내의 숨소리만으로 가득했고, 그 숨소리 조차 조심스러웠다. 나는 아내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탔다. 21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였지만, 한 없이 바닥으로 꺼져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딩동."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 후에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얼핏 문을 연 며느리 뒤로 눈에 초점을 잃은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무슨 죄인..
[대장암 일기 / 아버지의 일기] 1. 무너지면 안된다. 전화 2014년 2월. 여느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요즘 중국어에 푹 빠져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은퇴 후에 별 달리 집에서 하는 일이 없지만, 운동과 공부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유일한 일과다. 특히, 중국 출장을 다녀와서 흥미를 갖게 된 중국어 공부는 정말이지 내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오늘도 아내는 친구와 찜질방을 간다며 나가고 없다. 은퇴 후 아내와 함께 하루를 온전히 보낼 생각을 했었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텔레비젼을 보아도 환갑을 넘긴 아내들은 이제와서 가정에 시간을 할애하려는 남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그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가정과 회사에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