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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대장암일기

[대장암 일기] 12. 해결사

 대화가 필요해


 어느 날,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운동을 다녀오셨다. 그 동안 나는 집에서 운동을 좀 하고 집안일도 이것저것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인터넷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 위에 손을 얹는 순간,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너 왜 이렇게 운동도 안하고 앉아있어? 운동해야 한댔잖아. 컴퓨터 앞에 그렇게 앉아있는게 제일 안좋다고! 왜 운동 안해!"


 나에게 변명할 틈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일일이 변명을 하자니, 너무 핑계를 대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나는 하려던 컴퓨터를 포기하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족욕한다며! 아직도 안하고 있네? 왜 안해? 족욕해서 몸 온도를 올려야 한다니까!"


 정신이 혼미해 지고 있었다. 이걸 일일이 다 변명을 해야하는 것일까. 곧 하려고 했다는 말은 안하느니만 못할텐데. 굳이 이 말을 해야하는 것일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저게, 내가 있어도 저렇게 안하는데, 내가 없으면 어쩌려고 저럴까......어휴......"


 어머니의 한숨 섞인 말에, 나는 내 감정에 저항할 틈도 없이 모진 말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안해! 안한다고!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안할껄? 엄마가 있어도 이렇게 안하는데, 내가 엄마 없으면 이걸 다 혼자 하겠어?"


 결국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어머니의 의도가 그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냥 걱정어린 말이라는 것을. 지금 상황에서 아픈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어머니로써는 너무 걱정이 되어서 나온 말일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이고 알아서 할거라고 말씀을 드려도 어머니는 알아서 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으셨다. 나는 이런 대화가 너무 불편했다. 방 문 너머로 어머니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내가 얼른 내려가버려야지...나도 이런 꼴 보고싶지 않아...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너만 안아팠으면......"


 어머니가 계신 서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책상위에 업드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런 아들이 뭐라고... 이렇게 어머니한테 모진 말이나 쏟아내는 아들이 뭐라고 저러고 계실까. 


 "David, 너 그러는거 아니야...엄마는 걱정이 돼서..."


 마음이 무너지지만, 여기서 죄송하다고 일방적으로 상황을 마무리지으면 또 이런일이 생길 것이다. 내 태도에 대한 부분은 용서를 구하고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한다.


 "아까, 그렇게 말한 말투는 죄송해요..."


 듣고 계시는 것인지, 어머니는 아무 것도 없는 책상바닥만 보고 계신다. 


 "그래도 엄마, 엄마가 운동하러 나가있는 동안 내가 뭘 했는지 알아요?"

 "......"

 "나도 뭘 해야하는지 다 알고 있어. 그래서 운동도 찾아서 더 하고,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뭐라고 하면서 돌아다니려고 하고있다고. 그런데 엄마가 그걸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냥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돼."


 천천히 어머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어머니가 만족하시려면 나는 스물 네 시간을 운동만 하고 있어야 한다. 어머니가 원하는게 그런 것이냐. 어머니가 노파심으로 한마디씩 하는 매일매일의 그런 말들이 나 자신이 성인이 아니라고 느끼게 까지 만든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냐. 어머니의 그런 말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무너진다. 나는 이제 수술도 잘 끝났고, 수술 후유증도 많이 없어졌다. 엄마, 이제 나 하나도 안아파. 그런데, 마음은 너무 아파. 


 어머니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다음 날 누님 댁으로 짐을 챙겨서 가셨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심하게 했다는 자책과 함께 나만큼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되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중에 어머니가 오시면 사과를 드리고 서로 대화를 해 보자고 다짐을 해 갈 무렵, 어머니가 누나와 함께 집으로 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누나는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엄마, 엄마는 이제 David을 애 보듯이 하는 건 그만 둬. 그럴거면 엄마가 계속 끼고 살든지. 그런거 아니면 그냥 좀 믿어."


 한두살도 아니고, 이제 결혼해서 한 가정의 가장인데 사사건건 어머니 입맛에 맞추지 말라는 말이다. 알아서 잘 한다고 몇번을 말하는데 그러느냐. 믿어라. 그리고 집안 일은 며느리도 같이 해야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줘라. 다 당신이 알아서 해버리면 며느리는 대체 이 집안에서 뭐냐. 일을 알려줄 줄 알아야지 당신 혼자서 다 해버리면 안된다. 이건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도 연습을 해야한다. 그래, 내가 말하고 싶은게 바로 이거였어.


 "David, 도 잘한거 하나도 없어. 니가 그런 잔소리를 안들으려면 평소보다 더 잘해야할거 아냐. 그리고 어른들이 말하는 습관이고 생각하는 습관이 잘 안고쳐지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네' 대답하고 넘어가면 되잖아. 일일이 날카롭게 반응을 해야겠어?"


 듣고보니 맞는 말인데, 같은 말을 계속 들으면 반응을 안할 수가 없다.


 "그럼 어떡할꺼야. 엄마는 지금 아들이 아파서 계속 걱정이 된다는데, 여기까지 와서 말도 안하고 그냥 있어야겠어? 부모가 자식한테 그정도도 말을 못해?"


 누나는 나와 어머니를 나무라고 나서 다시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며 살아본 적이 별로 없어. 1년에 고작 서너번 얼굴보면서 지냈잖아.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 아들은 아파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엄마는 올라와 있는 거잖아. 그리고 엄마는 아직 아들을 어릴 때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안돼. 결혼도 했으니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나도 어머니도 누나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우리 가족들은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별로 없다. 그리고 나는 식구들과 대화를 한 적이 많이 없다. 서울로 올라와서 한달에 서너번 집에 전화를 할까 말까였다. 부모님과 통화를 하더라도 그렇게 긴 시간의 통화도 아니었다.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 하고 안부 조금 묻고. 이게 다였다. 아마도 어머니와 나는 이렇게 같이 생활했던 중학교때로 돌아가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에 대한 미안함에 고개를 떨구고 눈물만 흘리며 누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 노력하자. 우리가 다시 가족이 되어가는거야. 






<주의사항>

그러실 일은 없으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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